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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신문2000호 특집 저출산고령화 "제대로 된 연금개혁안 만들기" (김태일원장, 2024.06.03) 상세
제목 고대신문2000호 특집 저출산고령화 "제대로 된 연금개혁안 만들기" (김태일원장, 2024.06.03)
내용

제대로 된 연금 개혁안 만들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묻다 ② - 고령화

  •  기자명김태일 고령사회연구원장·행정학과 교수
  •  
  • 입력 2024.06.03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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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 고령사회연구원장·행정학과 교수
김태일 고령사회연구원장·행정학과 교수

 

  이제 연금개혁은 22대 국회의 몫으로 넘겨졌다. 21대 국회는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연금개혁을 논의했으나, 개혁안 도출에 난항을 겪은 끝에 공론화 과정을 거치기로 했다. 500명의 시민대표단에게 연금개혁의 다양한 의제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관심의 초점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합’이었다. ‘대안1: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와 ‘대안2: 보험료율 12%, 소득대체율 40%’라는 두 대안 중에서 과반수가 대안1을 선택했다.

 

  대안1·2 절충안 논의되기도

  공론화위원회의 선택 이후, 언론, 전문가 집단, 여당, 보건복지부에서 대안1에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이유는 해당 대안이 재정 개선에 전혀 도움 되지 않으며 오히려 악화시킨다는 것이었다. 이는 현행보다 보험료율을 4%p 높이고 소득대체율은 10%p 올리는 것인데, 높아진 보험료율 4%로는 올라간 소득대체율 10%를 충당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하여 국회 연금개혁특위에서는 대안1과 대안2를 절충하여, 13% 보험료율에 소득대체율 45%(더불어민주당 안)와 43%(국민의힘 안)를 놓고 논의하였으나, 합의에 실패하고 개혁안 도출은 22대 국회의 임무가 된 것이다.

  21대 국회 막판에 논의된 절충안을 두고, 여야가 보험료율 상향에 동의한 것은 큰 성과이며 의견 차이는 소득대체율 2%p에 불과하니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조속히 합의해서(가령 중간인 44%로) 개혁안을 만들라는 주문이 많다. 또 완벽하지는 않지만, 현행보다 재정도 개선하고 소득보장도 강화하는 것이니 이만하면 괜찮은 것 아니냐는 평가도 제법 있다. 반면에, 이 정도로는 재정 안정에 태부족이라면서 훨씬 더 강한 재정 안정 방안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13%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44%(43%나 45%도 마찬가지다)’ 정도로는 연금 재정의 지속 가능성 확보에 크게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재정 안정을 위해서는 보험료율을 점진적으로 더 높이거나, 혹은 추가적인 재원 조달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에 관해서는 여기저기서 문제를 제기한 탓에 비교적 잘 알려져 있으니 더 이상의 논의는 생략하자. 다만, 44% 소득대체율에서 완전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면 보험료율 상향이든 조세 투입이든, 낙관적으로 가정해도 현행보다 두 배 정도의 재원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은 명확히 하자.

 


 

  소득대체율 상향, 오진에 처방한 것

  이 글에서 내가 지적하려는 것은 절충안의 소득보장 강화 효과이다. 애초의 대안1은 현행보다 소득대체율을 10%p 높이는 것이고 절충안은 4%p(44% 기준) 높이는 것이다. 이 정도면 소득보장 강화로 괜찮은 것일까. 현행보다 10%p 높이면 급여액이 4분의 1 증가하고 4%p 높이면 10분의 1이 증가한다. 작년의 국민연금(노령연금) 급여액은 62만 원 정도였다. 기초연금을 더해도 OECD 평균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급여액이 10분의 1, 아니 4분의 1이 늘어난들 OECD 평균에는 어림없다. 그럼 어떻게 할까? 이번 개혁으로 44%까지 올리고, 다음번 개혁으로 다시 48%로 높이는 식으로 계속 높여가야 할까? 소득대체율을 높일수록 재정 안정을 위한 보험료율도 계속 높여야 한다. 현실성이 없다.

  재정 안정뿐만 아니라 노후소득보장 강화 측면에서도 소득대체율 상향은 효과적이지 않다. 소득대체율 상향이 필요한 이유로 제기된 것이 노후 빈곤 문제이다. 우리의 노인 빈곤율은 OECD 국가 최고 수준으로서 매우 심각하다. 그래서 노후 빈곤 해소는 꼭 해야 할 과제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소득대체율 상향은 노후 빈곤 해소에 별 도움이 안 된다. 빈곤 노인의 대다수는 국민연금 수급권자가 아니다. 작년의 국민연금 수급률은 50% 정도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의 높고 낮음은 정작 빈곤한 노인한테는 딴 세상 얘기일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국민연금 수급률은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수십 년 뒤에도 수급률은 80%에도 못 미친다. 여전히 정말 가난한 노인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빈곤 노인 중 수급권자가 증가해도 이들의 급여액은 낮다(당연한 얘기지만 국민연금 급여액이 높으면 빈곤 노인이 아니다). 소득대체율을 높이면, 그만큼 급여액이 늘어난다. 그래서 소득대체율 상향의 혜택은 기존 급여액이 많을수록 크다. 현행 수급자 중에는 급여액이 200만원 넘는 분들도 제법 된다. 반면에 40만원 이하인 사람은 훨씬 많다. 급여액이 200만원인 사람은 소득대체율이 10% 높아지면 20만원이 증가하지만, 급여액이 40만원인 사람은 4만원만 늘어난다.

  노후소득보장 강화를 위해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것은, 잘못된 진단에 따른 처방이다. 소득대체율은 ‘지급률×가입기간’에 의해 정해진다. 지급률은 1년 가입했을 때의 소득대체율이다. 현행 소득대체율은 지급률이 1인데 40년 가입을 가정한 것이라서 40%다. 소득대체율을 44%로 상향한다는 것은 지급률을 1.1로 높여서 40년 가입했을 때의 소득대체율이 44%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연금액이 낮은 주된 이유는 지급률이 낮아서가 아니다. 가입기간이 짧아서이다. 작년도 국민연금 신규 수급자의 평균 가입기간은 20년이 채 안 된다. 이에 비해 유럽 국가의 평균 가입기간은 35년이 넘는다. 만일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유럽 평균만큼 되었다면 급여액은 75% 이상 늘었을 것이다. 62만원이 아니라 110만원이 넘었을 것이다.

 

  가입기간 확대 지향해야

  국민연금 급여액 낮은 게 짧은 가입기간 탓이라면, 처방은 명확하다. ‘가입기간 늘리기’가 되어야 한다. 왜 우리는 가입기간이 짧을까. 유럽인들은 노후대비를 위해 젊은 시절 기꺼이 보험료를 내지만,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현재만 살아가서일까? 전혀 아니다. 유럽 국가는 정부가 적극적인 가입기간 확대 정책을 펼치기 때문이고, 우리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공론화 의제 중에도 가입기간 확대 정책이 다수 포함되었다. 예를 들면 의무가입 상한 연령 64세로 상향, 첫 자녀부터 자녀당 2년간 출산크레딧 부여, 전체 군 복무 기간 크레딧 부여, 저소득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 등이다. 유럽 국가들은 이미 하고 있는 것들이다. 사실 당연히 해야 하는 방안들이다.

  마땅히 해야 하는데도 이제껏 못한 것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64세까지 보험료를 부과하면 고용주들이 60대 초반 고용을 꺼릴 수 있다. 이를 방지하려면 상당 기간은 60대 초반 고용에 대한 보험료 지원이 필요하다. 출산과 군 복무에 대한 크레딧 인정 기간이 늘어난 만큼 추가 재원이 소요된다. 지역가입자 보험료 지원도 마찬가지다. 돈이 들더라도 해야 할 것은 해야 한다. 이러한 가입기간 확대 정책은 국민연금 제도를 정상화하는 것, 공적연금 취지에 맞게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규모의 재원을 급여액 높이는 데 사용한다면, 가입기간 확대 정책에 사용하는 것이 소득대체율(지급률) 높이는 것보다 훨씬 형평성 높고 효율적이다. 소득대체율 상향 혜택은 고소득층이 훨씬 크다. 가입기간 확대 정책은 소득계층과 무관하거나(예. 군 복무 크레딧 확대), 저소득층일수록 크다(예. 취약계층 보험료 지원). 가입기간 확대 정책에는 보험료 전액을 정부가 내주는 것도 있지만, 일부만 지원하고 나머지는 본인(및 고용주)이 부담하는 것도 많다. 또한, 자발적으로 가입기간 늘리려는 동기를 촉진한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미수급권자인 전업주부도 출산크레딧에 추가하여 몇 년만 더 보험료를 내면 수급권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입기간 확대 정책은 공론화 시민대표단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또한, 전문가들도 이견 없이 찬성하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의당 해야 하지 않겠는가. 22대 국회에서 만들어질 개혁안이 어떤 내용을 담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가 있다. 보험료율 13%에 소득대체율 43~45% 사이의 어느 것으로 정하고는, 재정 안정화나 가입기간 확대를 위한 추가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이번에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나중에 필요하면 다시 논의하자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안 된다. 막판 시간에 쫓긴 21대 국회와는 달리, 22대 국회에서는 여유가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제대로 된 개혁안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글의 축약본은 디지털타임즈 5월 21일자 칼럼으로도 소개됐다.

첨부 고대신문2000호특집-제대로된 연금개혁안_김태일원장240603.pdf